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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낭에서 꼭! 먹어야 할_출리아 로드(Chulia Road) 길거리 음식_완탄미(Wan Tan Mee), 커리미(Curry Mee), 아폼(Ap
    부산해달 in 말레이시아 2022. 8. 10. 00:20

    문 트리 47에서 재택 아닌 재택근무를 한 지 4 일째 되는 목요일.
    동그란 안경을 끼고 똑단발을 한 소녀가 홈스테이를 드나드는 걸 봤다.

    다음 날인 금요일 오후에는 어쩌다 같이 카페 구역의 큰 테이블을 공유하게 되었다.

    테이블이 널찍해서 일하기 좋았다.

     

    너도 나도 페낭에서 유유자적하는 베짱이가 되고픈 일개미 처지.
    인사를 나누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베트남 냐짱(Natrang)에서 왔다고 했다. 억양이 거의 없는 아주 유창한 영어였다.

    어지간하면 여행지에서 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겁도 의심도 많은 나지만, 나보다 네댓 살 어려 보이는 이 똘똘한 인상의 여자애는 무해해 보였다. (여행지에서 속단은 금물.)

    여태 여러 날 혼자 시간을 보냈으니 오늘은 대화 상대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면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가지 않겠냐니까 흔쾌히 수락을 했다.

    각자 일을 마무리하고 7시쯤 만나 함께 출리아 로드로 갔다.

    노을이 참 아름다운 날이었다.

     

    출리아 로드엔 바와 레스토랑도 많지만 길거리 음식을 파는 푸드 스톨(Food stall)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뜨거운 한낮에는 닫혀있다가 오후 다섯시쯤 하나 둘씩 장사 준비를 하고 곧 온 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찬다.

    길 양옆으로 음식 행상들이 열리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진다.
    뜨겁게 달궈진 웍을 흔들고, 분주하게 재료를 뒤섞고, 주문을 외치고, 받고, 난리가 법석이다.

     

    스톨마다 몇 개 놓인 테이블은 자리가 턱없이 부족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합석을 꺼릴 여지도 없이 일단 자리가 나기만 하면 앉아서 먹어야 한다.

    길 가운데로는 차들이 빵빵거리지, 행인들 지나다니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넋을 놓고 있다가 베트남 여자애가 묘책을 냈다.

    한 사람씩 번갈아 테이블을 지키면서 다른 한 사람이 완탄미와 커리미를 사 오는 거다.
    그럼 계산까지 깔끔하지 않은가.
    이렇게 현명할 데가. 역시 관상은 과학인가.

    내가 마실 거리로 레몬티를 추가로 사 왔더니, 레몬티 값으로 현금을 주겠단다.

    '척 보기에도 내가 언닌데 몇 푼 안 하는 레몬티 정도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벌써부터 이 자세로 나가다간 앞으로 여행지 즉흥 만남에서는 사는 언니 역할만 맡게 될 것 같아서 넣어두기로 했다.

    그래, 아직은 아니다.

     

    동생들 밥 잘 사주는 언니


    밥 먹고 먹을 디저트를 네가 사면되는 게 아니냐고 하니까 그렇다며 웃었다.

    문 트리를 나와 출리아 로드를 가는 길에 통성명을 했는데 안(Anh)이라고 했다.
    베트남 여자 이름 가운데 흔한 투이(Thuy)나 후옌(Huyen) 같은 이름일까 상상하기도 했는데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어감까지 야무진. 안.


    이게 완탄미다.

    쫄깃한 면을 간장 베이스 소스에 채소와 함께 볶아내는 볶음면이다.
    소자는 5.50 링깃(약 1600원), 대자는 7링깃(약 2100원).

    큰 기대하지 않고 북적이는 출리아 로드의 여행지 바이브가 고명이다~ 생각하고 먹으면 좋겠다.
    내 입맛에는 평범했다.


    커리미가 훨씬 더 맛있었는데 아직 안과 어색해서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동남아 스타일의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 커리라 풍부하면서도 칠리 오일이 들어가서 국물이 칼칼했다.



    후식으로는 커리미 바로 옆에 있는 스툴에서 아폼을 사 먹었다.

    아폼(Apom) 또는 아팜 발릭(Apam Balik) 이라고 부르는 이 디저트는 코코넛 팬케이크다.
    인도 음식점에도 같은 이름의 비슷한 디저트를 팔기 때문에 인도에서 유래한 게 아닌가 싶다.
    집집마다 만드는 방식이 달라서 땅콩이나, 바나나, 옥수수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

    문 트리 47의 주인아저씨 켄트가 추천한 이 집은 화려한 토핑보다는 수수한 반죽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기본에 충실한 상상 가능한 얇은 크레페 반죽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달기가 적당하고 얇게 구워서 식감이 좋으니 출리아 로드를 지나가다 본다면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이후 안(Anh)과는 세 곳의 바 투어를 하고 함께 우리의 임시 집 문 트리 47로 돌아왔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게임 회사를 다니는 안(Anh).
    영원히 물리적 출근을 하지 않기에 랩탑을 가지고 이곳저곳 자주 여행을 한단다.

    일본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졸업하고 5 년간의 외노자 생활을 하다 베트남 다낭 본가로 돌아온 거라고.


    베트남 사람과 만나 그토록 오래 이야기를 나눈 건 무척 오랜만이었다.
    기억 저 깊은 곳에 묻혀있던 띠엥 비엣(Tieng Viet) 단어들, 음식들이 속속 떠오르는 게 내가 다 놀랄 정도였다.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베트남에 대한 나의 경험치에 놀라는 안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내가 걸어온 길과 안의 이야기가 공통점이 많아서 흥분하여 꽤 깊은 이야기들도 많이 나눴다.
    안이 생각이 깊은 친구라 대화가 잘 맞았기 때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못 볼 사이에 가볍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혼자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남과 산뜻한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까먹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여행을 하다 누굴 만나면 더 어린 쪽이 나였지만, 이번 페낭 여행에서는 유독 특히 묵직한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얼굴이 참 앳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안은 다정하게도 자기 나이랑 비슷한 줄 알았다고 해주었지만 같이 어울리면 어린 친구들이 불편할 때가 내게도 오겠지.   

    그때까진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나이 많고 진지한 얘기만 하는 언니 역할을 맡지 않고 산뜻할 수 있도록 자중해야겠다.  

    진지한 얘기 시동거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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